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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에 사로잡힌 동생을 웃을 수 있게 한 건 가족뿐

동생이 조카를 위해 남구로 이사했다. 이사하고 코로나 여파로 서로 만나지 못하다 지난 일요일 시간이 되어 동생집으로 향했다. 예전에 동생은 자신의 기분에 사로잡혀 잠수를 자주 탔던 아이였다. 나 같은 경우는 우울증이 찾아오더라도 나만의 방식을 찾아 풀어보려고 노력하는 반면 동생은 우울한 기분에 잡혀 세상과 단절하는 아이는 일주일 전 우리 집에 놀다 간 후로 연락이 없었다. 동생이 연락이 없다는 건 자신이 원망스럽고 조카에게 미안하며 자신 때문에 노력하는 남편이 불쌍하게 느껴져 뭐라도 도우려고 하다 쓰러져 다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이런 자신의 몸을 원망하다 가족과 지인에게 연락을 두절하고 잠수를 탄 아이는 제부와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고 제부만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로 온 것이다. "혀니 우울증이지?" ..

기록삶 2022.04.08

남대문 밤 시장에서 새로운 인생을 배우다

30대 후반, 평범한 일상에서 치열한 삶에 발을 담갔다. 그때를 생각하면 왜 내가 힘든 의류 사업을 선택했을까 나에게 자문했다. 그때 그 상황에서는 의류 사업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잘 못 된 방법인걸 안다.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으니깐. 아픈 몸을 이끌고 밤 시장을 가기 위해 기차에 몸을 실었다. 아동복은 동대문보단 남대문이 훨씬 많다. 아니 남대문이 아동복 시장이라고 말하는 게 맞다. 처음 밤에 서울을 가니 어디가 어디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감각에 맡기고 옷을 구경했다. 사전 답사부터 시작했다. 검색을 하니 주니어복이나 유아복은 잘 생각해서 매장을 오픈하라는 말이 참 많았다. 그들이 하는 말에 공감 안 간 건 아무래도 내가 직접 발을 담그지 않았기에 당연한 거였다. 해봐야 안다. 그..

기록삶 2022.04.07

한 달 전보다 더 아픈 동생은 마비된 자신의 오른쪽 다리에 희망을 건 모습에 대견했다

한 달 만에 동생을 만나게 되었다. 한 달 사이 많은 것이 바뀌어 온 동생네 가족을 보면서 안타까웠다. 집안에 아픈 사람이 있다면 많은 것이 바뀌게 된다. 돈도 돈이지만 삶의 패턴이 무너진다. 동생네 가족은 제부는 제부대로 피곤한 얼굴이었고 동생은 움직임이 불편해서 몸이 부어 있었다. 병원에서 움직일 수 없던 동생은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동생은 부축을 해주면 길을 걷는 건 무리가 없었고 집안에서는 혼자서 움직일 수 있어 다행이었다. 환자가 집에 있으면 환자인 본인이 가장 고통스럽지만 곁에서 지켜보는 환자 가족은 피곤하다. 이건 내가 아파봐서 안다. 친정엄마가 아파봐서 안다. 동생이 예전에 아파봐서 안다. 우리 뇌는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내가 어떤 지시를 내리느냐에 따라 몸은 ..

기록삶 2022.04.06

발라드 음악을 다시 사랑하게 되었다

20대는 주야장천 발라드만 들으며 살았다. 가사마다 나를 위한 노래인 거 같은 착각에 빠져서 눈시울을 붉히며 지낸 날들이 많았다. 슬픔을 노래에 위로를 받았다. 개 중 어깨를 들썩이는 댄스곡도 있었다. 신이 나서 춤을 추며 노래를 불렀던 시기도 있었다. 이런 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18년 동안 내가 나를 지우고 살았다. 부모 그늘 아래 살면서 인생이 고달팠고 삶이 사련으로 다가와서 힘겨웠다. 음악 듣는 건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라는 걸 그때 알게 되었다. 슬픈 노래는 내 곁에서 뼈를 깎고 살을 도려내는 일상을 준다고 생각했다. 숨통이 트이려고 하면 험한 산이 내 앞에 버티고 있었다. 앞날이 막막하니 급기야 슬픈 노래를 좋아해서 인생이 꼬이고 꼬인다고 생각했다. 결국, 즐겨 듣던 음악을 가슴..

기록삶 2022.04.05

내 뒷 모습이 궁금하면 아이 뒷 모습을 보면 안다

작년 5월 갑작스럽게 여행이 하고 싶어졌다. 작년이면 코로나가 심각할 때였다. 그러나 가까운 거리조차 여행할 수 없는 지금 이 순간이 갑갑했고 때마침 아이가 비행기 타고 싶다고 했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엄마 생신과 어버이날을 통틀어서 가족 여행을 해보자고 했고 친정엄마 지인 중 제주분이 계셨다. 사실 운전을 못하는 나라서 운전을 대신해 줄 분이 필요했고 겸사겸사 엄마와의 인연이 오래되어 모시고 싶었다.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친정엄마와 지인 그리고 모녀가 한 식당에서 여행 계획을 세웠다. 일사천리로 진행한 제주 여행. 드디어 여행을 떠나는 첫날. 엄마 지인분은 오랜만에 고향에 오셔서인지 고향분들을 만난다고 했다. 나와 아이는 일찍 감치 저녁을 먹었던지라 간식 사러 편의점 가는 길에 월정리 해변이 너무 ..

기록삶 2022.04.02

정리라이프가 나에게 이상적이다

정리는 나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루틴이다. 서랍이나 옷장 등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으면 하루 종일 그 일만 머리에 맴돈다. 물건은 각자 자리가 있다고 책에서 본 적이 있었다. 독립적인 내 공간이 생기면서 정리에 대한 호기심을 책이나 잡지를 찾아보며 배웠다. 책은 일본 작가였지만 실용적인 부분만 내 집에 적용했고 정리했다. 그때 책에서 그랬다. 리모컨 자리를 따로 마련하면 그 물건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게 된다고. 그 말을 믿고 재활용품을 이용해 서랍장을 정리하면서 식구들에게 일러줬다. 여기는 이걸 넣고 저기는 이걸 넣는 공간이라고. 근데 식구들은 귀찮아했다. 결국 모두가 출근하고 학교를 가고 나서야 물건의 자리를 대대적으로 수정했다. 일단, 온 가족이 사용하지 않고 침범하지 않는 주방부터 정리했다. 칼..

기록삶 2022.04.01

배려 깊은 사랑 '경청' '눈빛' '스킨십' 공감은 나에게 하며 사랑을 배우다

배려 깊은 사랑을 육아에 접목하다 보니 힘들었다. 배려 깊은 사랑에는 4가지가 있다. 첫 번째, 눈빛 두 번째, 경청 세 번째, 스킨십 네 번째, 공감이라고 한다. 근데 나는 자라온 환경에서 네 가지를 받지 못하고 자랐다. 경청 부분에서는 내 말을 듣기는커녕 어리다는 이유로 내가 말을 하면 막아 버렸다. 어린아이가 뭐를 아냐는 말이었다. 그 후로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하지 못했다. 말을 하면 제지를 받았다. 제지를 받을 때마다 나의 감정은 수치스러웠다. 내가 하는 말은 타인에게 부정적으로 다가간다는 오해 하며 인정받지 못하는 말이라고 단정 짓었다. 두 번째는 경청을 받지 못하고 자랐다. 받지 못하니 줄 수 없었다. 주려고 하더라도 내 안에서 꿈틀거리는 분노가 올라왔다. 결국 포기하며 살아왔다. 눈빛 부..

기록삶 2022.03.31

'인정'하면 인생이 편안해진다

작년 여름에 있었던 일이다. 번아웃과 함께 찾아온 슬럼프로 힘겨운 여름을 보내고 있었다. 슬기롭게 이 감정 늪에서 빠져나오고 싶었다. 하지만 방법을 알 수 없었다. 심각할 정도로 찾아온 슬럼프는 살아오면서 처음 겪었던 감정이었다. 감정에 휘말려 무기력이 찾아왔던 그때 '누구나 한 번쯤 슬럼프에 빠져요. 그러나 슬럼프에 빠져나오는 것도 본인 스스로가 해야 해요. 내가 슬럼프에 빠져나올 수 있었던 건 '인정'을 하지 못한 나로 인해 무기력한 슬럼프에 심각하게 빠지게 되었죠'라는 말이었다. 슬럼프에 빠져 있던 나, 그때 왜 아파하는 걸까 곰곰이 생각했을 때 내가 나를 인정하지 못하고 있었던 걸 깨달았고 티브이를 보다 모 연예인의 경험담이 방송에서 전파되었다. 나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그 연예인은 자신을 제삼자..

기록삶 2022.03.29

금속 알레르기가 하필이면 멋쟁이인 나에게 왔을까

언제부터인가 내 몸은 달라지고 있었다. 내 몸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부분이 있는 줄 몰랐다. 20대가 되었고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 첫발을 내디뎠을 무렵이었을 것이다. 사회초년생은 돈이 부족하다. 첫 월급이 나올 때까지는 부모님에게 손을 내밀어야 했다. 첫 월급을 받고 가장 먼저 샀던 물건이 바로 액세서리였다. 귀를 뚫지 않았던 나는 액세서리 귀걸이로 멋을 냈다. 청바지를 입고 지퍼가 있는 옷을 입으면서 어른이 되었다고 느꼈다. 그러던 어느 날 온몸이 가렵기 시작했다. 무슨 이유인지 알 수 없었다. 이너웨어를 입고 겉 옷을 입어야 했지만 챙겨 입는 것이 귀찮아서 겉옷만 입고 다녔던 그때 몸에서 반응이 보였다. 식중독이 걸린 것처럼 피부가 울근불근 해지면서 가려워 미칠 지경이었다. 특정 부위에 피부염이 올라왔..

기록삶 2022.03.28

서울 아산 병원 염증성 장질환 나의 주치의를 소개합니다

7년이 되어간다. 그 선생님과의 인연은 우연이었다. 2012년은 궤양성 대장염이 흔하지 않았다. 내가 그 병을 앓고 나서 채널을 돌릴 때마다 대장에 대한 병들이 의학 프로그램에 나왔고 그중 궤양성 대장염과 크론병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아마 그 해에는 궤양성 대장염과 크론병이 유행이 된 듯했다. 흔하지 않은 병이 2012년에 걸쳐 2013년까지 대장에 관한 프로가 참 많았다. 그러나 지금도 그 병이 뭔지 모르는 사람이 많다. 한참 유행?이던 병의 권위자라고 하면서 서울아산병원에 계시는 양석균 교수가 매체나 유튜브에서 많이 보았다. 그때 난 이 사람에게 가면 관해기가 오려나 하며 병원을 옮기려고 했다. 내 병을 진단한 병원에서는 많은 약을 처방했다. 이 약 저 약을 처방하는 병원은 나를 더 지치게 했다...

기록삶 2022.0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