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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영도 목장원 가는 길, 흰여울 문화 마을에서 놀기

부사작년 가을 문득, 여행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름다운 부산을 지천에 두고 먼 곳을 갈망하는 나에게 물었다. '너 지금 어디를 가고 싶은 거야. 네가 사는 곳도 멋진 곳인데 굳이 먼 곳으로 눈을 돌리는 이유는 뭐니. 그 이유를 생각해봐' 마음의 소리를 곰곰이 생각한 결과 부산은 내가 모르는 멋진 곳이 있었다. 내가 부산을 떠나 타 지역에서 몇 년을 살면서 부산의 변화를 인지하지 못했다. 타 지역 사람들은 부산에 여행 오려고 노력하는데 나는 다른 사람들이 갈망하는 지역에 살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들어 그때부터 내가 사는 곳에서부터 여행을 했다. 가장 먼저 내가 태어난 곳, 부산 영도를 둘러보았다. 작년 가을에 시작된 내 지역 내 고향을 둘러보면서 많은 것이 변하고 있었다. 나만 늙고 변하고 있다는 ..

부산 2022.01.21

백종원 클라쓰 감자탕 레시피, 겨울엔 감자탕 한 그릇 먹기

요리를 과감하게 했던 기억을 거슬러 보면 요리학원을 다니면서 자존감이 높아졌다. 곁에 있는 사람은 나에게 똥 손이라고 했다. 뭐를 만들어도 감칠맛이 나지 않아 똥 손이라고 놀렸다. 사실, 엄마 곁에서 죽자 살자 일을 했다. 주방은커녕 요리에 '요'자도 모르고 지냈다. 엄마가 알아서 내 앞에 대령했으니까. 아쉬움이 없었다. 먹는 것을 즐기는 편이 아니었고 그렇다고 장금이 뺨치는 미각을 가지지 않은 나로선 음식은 그저 생명을 유지하는 수단이자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음식이 지독하게 싫었다. 살 수 있을 만큼 먹었다. 다들 그렇게 먹고살 수 있냐고 물었다. 나는 이상할 것이 없었다. 욕구를 채울 만큼 먹고 지냈기 때문이다. 그러다 결혼을 하고 나니 주방은 곧 여자의 두 번째 방처럼 느껴졌다. 정말 눈앞이 캄캄했..

기록삶 2022.01.20

[부산 여행] 부산 카페, 부산 영도 카페 신기산업은 나의 옛 추억이 묻어 있었다.

작년 가을 무렵 백신을 맞고는 부산 이곳저곳을 다니며 힐링을 했다.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 생각하면 아마도 공허함이 몰려왔던 거 같다. 그리고 오랫동안 집에 갇혀 지냈으니 답답한 공간을 벗어나 색다른 곳을 찾기 위함이기도 하고... 거기에 아이도 한몫했다. 집에만 있으면 심심하다고 하니 엄마인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지방에 사는 분들도 부산 여행을 하는데 부산에 사는 부산 토박이가 부산을 모른다는 것이 수치스러웠다. 수치스러워할 필요가 없었지만, 15년 동안 부산을 싫어했다. 부산은 상처의 얼룩으로 곳곳에 그 상처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점점 부산과 멀어지더니 어느 날, 부산에서 둥지를 틀고 지내고 있었다. 아이는 부산이 처음이다. 태어난 곳이 다른 곳이어서 부산은 외할머니 집이 전부였다. 내..

부산 2022.01.18

자가격리 3일째, 이것도 처음이

지난 금요일 오후에 날벼락을 맞은 기분이었다. 벼락을 맞은 기분이 이런 걸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머리가 몽롱했다. 목요일, 아이는 늘 그렇듯 자신이 배우고자 하는 것에 열정을 보였다. 엄마인 나는 아이가 원하는 대로 학원을 보냈고 그날따라 곧장 집으로 향했다. (보통은 마트를 들리는 편) 그리고 금요일 오후에 한 통의 문자가 도착했다. 학원에서 코로나 환자가 발생했다고 그러니 코로나 검사를 하라는 메시지였다. 그동안 방역수칙을 나름대로 잘 지키며 지내왔고 모임이나 사람이 북적이는 곳을 다니지 않아 코로나 검사는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한 것이 잘못되었음을 지난주 금요일 깨트렸다. 금요일, 토요일 그리고 그 담주 일정이 모두 엉망진창이 되고 말았다. 일단, 학원 원장 말을 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통화를 시도..

기록삶 2022.01.17

인생은 살아가다보면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한다. 이럴땐 미리 대비해야 한다

인생은 참 재미있는 거 같다. 생각하지 않은 일이 늘 즐길 거리로 다가온다. 열심히 하루를 살았는데도 불구하고 황당한 일이 곁으로 온다. 수많은 고통을 이겨낸 사람이라면 이 정도 일은 그저 웃음이 날 것이다. 이건 고통의 축에도 들지 못하니깐. 조심하고 또 조심해도 다치는 건 어쩔 수 없는 세상 삶아가는 이치가 아닐까? 코로나가 발생하고 정말 조심했다. 확진자 수가 증가하면 할수록 집에만 있었다. 최근 코로나 백신을 2차까지 맞고 안심했다. 그리고 아이를 언제까지나 방치할 수 없었다. 나이가 어느 정도 되니 사회성을 띠기도 하고 다른 세상을 배우고 싶어 했다. 어미로서 당연히 해야 할 행동을 취했다. 그리고 조심하며 철저한 방역수칙을 지켰다. 근데 코로나 환자가 아이가 다니던 학원에서 나왔다고 했다. 한..

기록삶 2022.01.14

나는 아픈 몸으로 마케팅 합니다

20년 전과 10년 전 두 번을 나눌 수 있는 병원 생활은 삶이 고달팠다. 누구는 사업을 실패해 고달픈 삶을 살아가고 누구는 마음이 아파 고달픈 삶을 살아간다. 고달픈 삶 중에 나에게는 병이 찾아왔다. 삶 중 가장 고달프고 힘든 건 당연히 몸이 아픈 거다. 나에게 다가온 고달픈 삶은 몸으로 찾아왔다. 그것도 두 번이나, 한 번으로 족한 병은 두 번을 겪었다. 정말 피하고 싶었다. 이건만은 제발 피해 가라고 했다. 그러나 내 곁에 다가온 고달픈 삶은 피해 가지 않고 나에게 안주했다. 몸이 병들고 말았다. 병원생활을 하면서 최악의 말까지 듣고서도 당당히 살아났다. 병원에서 더는 가망이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저 이 세상이 원망스러웠고 억장이 무너졌다. 한참을 원망스러워하다 이건..

기록삶 2022.01.12

골뱅이 무침 당기는 날, 골뱅이 무침 레시피

20대 시절.. 주방 들어가기가 참 무서웠다. 칼 쓰는 일도 무서웠고 어떤 요리를 할 수 있을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주방이 두려운 공간으로 되었고 그 무렵 결혼을 하게 되었다. 과일조차 깍지 않던 내가 직접 과일을 깎게 되는 기적이 일어났다. 결혼은 다 그런 거라고.. 무엇이든 척척 해결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엄마를 보면 무의식적으로 배웠다. 여자에서 며느리, 아내가 되면서 주방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공간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요리에 '요'자도 모르던 내가 요리학원을 다니면서 요리를 깨우쳤고 깨달음이 왔다. 한식은 기본 양념장만 알면 뭐든 만들 수 있다고.. 기본적인 양념을 배우고 나니 자격증 시험을 칠 수 있는 자격을 주어졌다. 자격증을 취득하고 요리학원 졸업을? 했다. 6개월 수련 과..

기록삶 2022.01.10

성시경표 토스트 한 날 - 담백한 토스트 만들기 방법

토스트는 일 년에 한 번 먹을까 말까 하는 음식이다. 늘 한식이라는 음식이 내 입맛과 아이 입맛에 착 달라붙어 있어서 그런지 토스트 재료가 집에는 없다. 스팸조차도 없다. 내가 왜 토스트를 하게 되었냐면 가수 성시경 유튜브를 보다가 너무 맛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간단하지만 그동안 내가 해왔던 방법과 맛이 다를 듯 할거 같아 아침 겸 점심을 먹는 우리 집에 딱인 듯했다. 그리고 성시경 어머니가 해 준 그 맛 그대로라고 칭찬하는 성시경 가수의 말에 이 음식으로 성시경 모친 손맛을 느끼지 않을까 하는 이상한 심리도 자극했다. 스팸이나 계란은 아이가 좋아하는 거라서 아이와 함께 먹으면 한식이나 밥을 따로 하지 않아도 되었다. 사실 아침이든 저녁이든 빵 종류로 밥 대신 먹는 날은 약간의 가스가 찬다. 가스가 ..

기록삶 2022.01.07

[엄마 에세이] 엄마와 아이 사이에는 질투가 있다

엄마와 아이 사이에는 그 무엇을 남기고 뺏지 않은 관계다. 아이가 하면 더 좋고 엄마가 하면 좋은 것이 엄마 마음일 테지만, 나보다 아이가 더 잘 어울리는 모습을 보며 살포시 질투를 느꼈다. 작은만한 얼굴로 태어난 내 딸, 뭐를 쓰고 입어도 작은 얼굴 덕분에 빛을 보는 내 아이를 보면서 모자가 엄마보다 아이가 더 잘 어울리는 모습에 기쁘면서도 질투하는 여자 마음이 보였다. 새로 산 모자를 쓰며 누가 더 잘 어울리나 내기를 했다.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면서 판이하게 아이가 더 잘 어울린다는 말에 기쁘면서도 질투를 했다. 그때는 알지 못했다. 내가 아이에게 질투하는 것을.. 그러나 글을 쓰면서 내 감정을 알아차리니 보였다. 그때 그 감정은 질투였다는 걸.. 질투하는 것이 어른스럽지 않아 혼자 애써 변명을..

기록삶 2022.01.06

추운 겨울엔 소고기 국으로

아주 오래전 시골 장터에서 행사가 있었다. 그 지역 주민이다 보니 늘 행사가 있으면 찾아가곤 했다. 시골 장터 단골손님으로 등장하는 소고기 국밥은 서민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었다. 시골에서 10년을 살면서 시골 사람들의 푸짐한 인심을 한 몸에 받았다. 뭐를 사더라도 덤은 기본이고 협상하지 않아도 알아서 뒤단위 돈을 깎아주었다. 시골에서 이루어지는 행사는 그 지역 상인들이나 부녀회가 모여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내가 아는 사람도 있고 시골 인근 도시에서 상인들이 들어와 판매하는 물건이나 음식이 즐비했다. 그런 구경거리가 그때는 요깃거리가 되었고 눈과 마음을 설레게 했다. 저녁 무렵 산책 삼아, 산을 벗 삼아 걷다 보면 푸짐한 인심을 자랑하는 상인들이 보인다. 저녁을 거르고 행사장에 도착하면 한결같이 찾아가..

기록삶 2022.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