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삶

서향은 감수성을 자극하는 자극제다

사빈 작가 2022. 3. 10. 20:13

"집을 구할 때 가장 먼저 보는 건 뭘까요"

"그건 방향이죠. 동향이냐 남향이냐, 서향이냐를 먼저 봐야죠"

 

10년 전 새 아파트로 입주하면서 공인중개사에게 물었던 질문이었다. 어른들이 한국인 정서론 안정적인 구조가 정사각형이며 방향은 남향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럴까? 10년  남향만 고집했던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이 뭔지 모르고 살았다.

 

인생 선배인 어르신들은 이렇게 말했다. 비싸더라도 기왕이면 남향으로 집을 구하라고. 어른들 생각은 남향은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하다고 했다. 그 말만 찰떡같이 믿었다. 남향인 집은 여름엔 시원하지 않았고 겨울에는 추운 건 똑같았다. 어른들의 기준은 바로 주택이었다. 

 

아파트는 남향이든 서향이든 상관이 없었다. 난방이 잘 된다면 한 겨울은 따뜻했고 여름엔 에어컨이 있어 더위 걱정은 없었다. 즉, 내 생각은 각자의 성향에 맞게 방향을 정하면 된다는 거였다. 아파트나 주택을 볼 때 전망을 본다. 일명, 뷰라고 한다. 내가 바라보는 뷰는 강이 흐르는 그런 곳, 몽환적인 분위기를 선물해주는 석양을 오롯이 바라볼 수 있는 곳을 선호한다. 그런데 내가 살았던 집은 아파트만 보였고 논, 밭이 보이는 곳이었다. 남향을 선호하면 뷰는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 아파트 다니면서 알게 되었다. 충천도는 서쪽으로 치우친 도시지만 석양이나 노을을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집 방향이 남향이었기 때문이다. 

 

요즘 짓는 아파트를 보면 남향은 뷰를 포기해야 한다. 세대주를 늘리기 위해 아파트 구조가 다양해서 남향에 뷰까지 좋다면  아파트 가격은 엄청 비쌀 것이고 인기 없는 방향은 구조까지   빠져 계약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부동산을 투자하는 사람이라면 이왕이면 남향을 선호한다. 왜냐면 대부분 사람들이 남향을 선호하니깐. 내가 10년 넘게 남향 아파트에서 거주했다. 거실과 안방은 남향, 작은방 두 개는 서향으로 된 아파트, 구조는 타워형이었다. 남향의 오후 햇살은 포근하지 않았다. 그러나 서향으로 빠진 작은방은 오후 햇살을 만질 수 있는 곳, 노을을 선물을 주는 곳이라서 커피를 마시기도 했고 사색을 하기도 했다. 그때부터 나는 서향에 마음을 뺏겼다. 

 

이제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으면서 내가 원하는 대로 서향으로 뻗은 집에서 1년간 거주 중이다. 상상하면 꿈은 이루어진다고들 한다. 나는 늘 머릿속으로 상상을 했고 그렸다. 살아가는 모습까지 그렸다. 그 결과 베란다에서 바라보는 뷰는 강이 흐르고 있었고 오후 햇살로 인해 윤슬이 내려앉는다. 거기에 붉은 노을, 핑크 노을, 오렌지빛 노을을 선물로 받는다. 어떤 이는 나에게 그랬다. 뷰 맛집이라고.

 

작년 여름에는 해가 길어져 오후 2시부터 커튼으로 해를 가린다. 오후 6시가 되어도 해는 쨍쨍했다. 저녁 7시가 되면 붉은 노을을 선물 주는 시간이다. 커튼을 걷고 멍하니 노을을 감상한다. 작년 여름에는 수많은 빛을 간직한 노을과 석양을 선물로 받았다. 매일 매 순간 노을빛을 놓치기 아까워 사진으로 남겨두었다.

 

밤이 되면 강에 흐르는 윤슬은 잔잔해진다. 어디를 가든 윤슬이 간직한 빛은 고요하기만 하다. 고요한 윤슬을 바라보며 글감을 상기시킨다. 고요한 윤슬은 내 안에서 심하게 요동치는 파동을 잠잠하게 만들어 준다. 그래서 난 밤에서 새벽으로 넘어가는 그 시간을 사랑한다.

 

20대는 부산 송정에 위치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바다 위로 비치는 석양을 바라본 적이 있다. 그때부터 나는 해지기만을 기다렸다. 20대는 뭐든 감수성이 풍부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나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감수성이 풍부했고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을 사랑하고 있었다.

 

여름엔 석양은 긴 시간 동안 여운을 남겼다면 겨울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만다. 겨울의 석양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하면 어느 순간 석양은 사라진다.

 

일상 속에서 나를 알아가는 과정은 거창하지 않았다. 매일 매 순간 일어나는 모든 일은 내가 좋아하는 일이었다. 앞으로 꿈을 그릴 때는 석양을 원 없이 볼 수 있는 집, 작업실, 카페 하다못해 여행지도 아름다운 노을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을 정한다. 텅 비어버린 마음을 채우기 위해서는 열심히 쫓아가며 채우고 있다.

 

석양이나 노을을 사랑을 정확하게 알고 나니 촛불이 그리웠다. 내가 끄지 않는 이상 촛불은 내 곁에 오래 머무는 장점이 있었다. 캔들과 캔들 홀에 담긴 초를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벅차다. 거기에 와인과 함께라면 그 누구도 부럽지 않았다. 불멍을 하다 보면 지나간 추억을 회상하기도 한다.

 

낮의 태양은 강렬하지만 저녁 무렵 태양의 빛은 나에게 고즈넉함과 고요함을 선물로 주고 떠난다. 스마트폰에 기록된 석양 사진은 차고 넘친다. 매 순간 같은 석양이라고 말하지만 그건 아니다. 어느 날은 핑크 빛으로 다가오다 어느 날은 붉은빛이다가 어떨 때는 오렌지 빛으로 하늘을 물들인다. 

 

그래서 태양은 찬란하다고 말하는 거 같다. 찬란한 태양은 마지막까지 자신의 생명을 아름답게 빛내고 사라진다. 공허한 내 마음, 외로운 내 마음을 따사롭게 물들이고 다음날을 기약한다.

 

태양은 태양 나름대로 고유의 빛깔이 있다. 달은 달대로 자신의 빛깔이 있다. 그렇다면 나는 무슨 빛깔을 내고 앞을 밝히고 있는지 궁금했다. 내가 모르는 나의 빛을 알아내려면 내 안에 묻어두었던 감정을 정직하게 바라봐야만 한다.

 

지금 나는 석양의 몽환적인 빛을 닮고 싶다. 석양은 나에게는 안식처이자 포근한 집이기에 서향으로 펼쳐진 세상을 마음껏 사랑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