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카페 투어] 영도 흰여울 문화 마을 '에테르' 브런치 카페

사빈 작가 2022. 9. 1. 13:56

난 영도에서 태어났고 영도에서 자라면서 어린 시절 수시로 영도를 벗어난 삶을 살았다.

영도는 엄마의 고향이자 외갓집이 있고 엄마 친정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런 도시에서 나는 아픈 일이 많았다. 상처로 얼룩진 고향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겠노라고 다짐했었다. 근데 그런 내가 마흔을 훌쩍 넘기고 다시 발길을 돌렸다.

 

영도는 예전 섬나라 영도가 아니다. 다리가 연결되면서 영도에서 벗어나 시내로 갈 수 있는 여러 경로가 생겼고 관광지가 개발되면서 관광객들로 붐비는 곳이 되었다.

 

나는 더는 살지 않지만 내가 태어난 곳이라서 혼자 영도로 발길을 돌렸다.

 

영도에 가면 내가 몰랐던 상처가 바다 수면 위처럼 내 마음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을까 하는 반신반의 한 마음과 또 다른 글 찾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흥미로움을 안고 출발했다.

 

우리 집에서 세 번의 환승 끝에 영도에 도착했다.

그동안 무수히 검색한 브런치 카페를 찾았고 가볍게 먹을 수 있는 브런치와 디카페인이 함유한 커피를 주문하고 고요한 바다를 바라보았다.

 

바다는 그대로였다. 어린 시절 바다와 지금 내가 바라보는 시선의 바다는 평행선이었고 변함이 없었다.

사람만 변했고 동네가 변했을 뿐 영도 바다는 그대로 정박한 배가 둥둥 떠 있는 그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바다를 지키고 있었다.

 

따가운 햇살이 들어오는 창가를 고집한 나는 뷰만 바라보며 글을 쓰려고 했다. 영상도 찍고 글도 쓰고 책도 읽으면서 서넛 시간을 보내려고 작정하고 갔는데 그만 마음 밑바닥에 깔려 미쳐 발견하지 못한 상처가 바다 수면 위로 떠올랐고 통곡할 수 없는 고통에 그만 먹었던 브런치가 체하고 말았다. 

 

두어 시간이 흐르자 이름 모를 땀이 등줄기를 타고 내려왔다.

어질 한 머리를 움켜 잡고 수면 위로 떠 오른 상처를 글로 표현했다. 눈물을 삼키며 써 내려간 글은 나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다.

 

영도 배경으로 한 아이의 한 여자의 삶을 쓰기로 말이다.

 

결론을 내리고 나니 온 몸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어했다.

흰여울 문화 마을을 오롯이 혼자 구경하려다 몸은 지쳐 그만 집으로 가자고 말을 걸었다. 

 

무시할 수 없는 반응에 버스를 탔고 버스에서 통증은 심해졌다.

탔던 버스는 더는 탈 수 없어 영도 한 동네에 내려 가만히 앉아서 속을 달래야만 했다.

곧 아이가 하원할 시간이라서 정신을 놓으면 큰일이었다.

 

한참을 벤치에 앉아 주위를 살피는데 그곳은 엄마 매장이 있는 동네였다. 무의식적으로 엄마가 일하는 곳을 찾아 발길을 돌렸던 것이다. 벤치 맞은편 상점들을 보며 '엄마가 일하는 곳이 저기 어디쯤이네'라며 울렁거리는 속을, 어질어질한 머리를 주르륵 흐르는 등줄기 식은땀을 추스르며 나를 다독였다.

 

'영도는 너에게 아픈 곳이구나' '이제 알려줘서 미안해' '너에게 도움 되지 않은 곳을 가자고 해서 미안해'

'그동안 수고했어' '아픈 곳을 찾아서 정말 다행이야' '앞으론 좋은 일만 가득할 거야. 아픈 상처를 찾았고 그 상처는 언젠간 네가 치유할 테니 말이야' '정말 고생 많았어'

 

다독이고 안아주며 두 번 다시는 못 올 곳이 아니라 상처를 치유하려면 이곳을 다시 찾아야 한다는 강한 용기가 생겼다.

 

 

브루타치즈

에테르 카페는 낭만 그 자체였다.

내가 즐겨 다니던 그 거리에 위치한 에테르 카페는 관광객들로 인산인해였다. 오후 2시쯤 되니 자리 빈 곳을 찾아 줄을 서는 웃지 못할 광경을 목도하고는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베이커리 종류, 다양한 브런치 그리고 어디에서나 볼 법한 커피들로 관광객들과 그 지역 주민들을 반기고 있었다. 에테르 카페 구조는 1층 야외였고 지하 2층과 3층은 실내인데 바다 뷰를 오롯이 볼 수 있는 창가 뷰와

먼 거리에서 바다와 카페를 볼 수 있는 자리가 배치되어 있었다. 물론 루프탑은 기본이었다.

 

음료는 본인이 직접 가져와야 하지만 브런치는 또 달랐다.

직원이 직접 배달해주었고 어떻게 먹는 건지 설명까지 해주는 센스가 돋보이는 곳이었다.

 

주의 소음을 차단하기 위해 이어폰을 낀 나에게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반복 설명을 해준 덕분에 그날 브런치는 여러 가지 맛을 보게 되었다.

 

디카페인이 나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 현재가 너무나 감사하다. 커피를 마시면 잠을 이루지 못하는 체질이라 커피보단 음료나 차를 마셨지만, 디카페인이 수면에 영향을 주지 않은 지금 내 몸 상태는 지극히 양호하다고 말해주고 있다.

 

바다를 한 번 보고 책을 보고

바다를 한 번 보고 노트북을 보고

바다를 한 번 보고 노트를 보며 

 

바다와 대화를 하고 

바다와 마주 보는 것이 나의 힐링 포인트가 되었다.

 

사막했던 천안을 떠나 바다와 산이 어울려져 있는 부산이 나에게는 가장 잘 맞는 도시임이 틀림없다.

고향이자 앞으로 아이의 제2 고향이 될 부산.

 

그리고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발전 가능성이 없던 영도가 북항대교로 인해 발전했고 관광객을 끌어들일 수 있는 고향이 멋지지만 나의 어린 시절 추억이 산산조각으로 흩어져 씁쓸했다.

 

영도는 아주 작은 주택들이 많은 도시다. 그곳에서 나 또한 자랐기에 새롭지는 않다. 그런 집을 카페로 재탄생되었다는 것에 경이로웠고 늘 불만 가득했던 영도 바다가 누구나 선호하는 여행지가 되었다는 것에 영도 바다를 다시 보게 되었다. 

에테르 카페

그때는 미처 몰랐을 바다의 내음

그때는 미쳐 알지 못했던 바다의 소리를

 

늦은 나이에 전해 들었다. 다음에 가면 또 어떤 소리를 전해줄지 기대 반 설렘 반 걱정 반이다. 

에테르는 유명해서 굳이 글을 쓰지 않아도 되지만 혼자서 간 카페 투어를 기록하기 위함이기도 하고 먼 훗날 '이 나이에는 이런 걸 했구나' 알 수 있는 기록물이 될 수 있어서 매일 일상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시간이 될 때 글로 풀어낸다.

 

작가의 삶은 일상이 하루가 글감으로 승화된다. 만약 내가 아닌 남이 바라본 영도 바다라면 어떤 생각을 할까 감히 상상하면서 부산 투어는 쉼 없이 이루어진다.

 

속을 달래고 8번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아이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지 못했고 저녁을 함께 먹지 못했다. 속은 답답했고 소화가 되지 않은 거 같아 한 끼를 굶었다.

크림수프

그러나 체한 상태가 아니라 아픈 감정을 이겨내지 못한 내 몸의 불편함이었다.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배고픔이 찾아왔다. 아이와 크림수프를 먹으며 "엄마 이제 배 괜찮은 거야"라고 아이가 물었다. "이제 괜찮네. 역시 엄마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인가 봐. 영도 갔다가 얼마나 아팠는지 몰라. 아직 엄마에겐 영도는 아픈 섬나라인 거지" 말했다.

 

아이는 엄마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영도라는 곳은 엄마를 아프게 하는 곳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어린 시절 아픔을 억눌리고 살아간 지난 세월을 보상이라도 받듯 그렇게 고향을 찾았고 내가 태어난 곳에 발길이 머물렀다.

 

상처와 마주할 용기가 이제는 생긴 것이다.

 

영도에는 수많은 동네가 있다. 내가 졸업한 동삼중학교를 비롯해 같은 초등학교를 두 번이나 전학한 동네가 있으며 외갓집과 친척들이 옹기종기 살던 동네, 큰 이모가 살던 청학동 등 내가 아파서 들춰보기 싫은 상처의 동네를 돌아볼 생각이다.

 

많이 변해버리는 그곳과 내 머리와 가슴에 남겨진 그곳을 찾기란 쉽지 않겠지만 차근차근 되짚어 보면 어딘가에는 상처가 그대로 생존해 있을 터이다.

 

암흑 속에 뒤 덮인 고향의 구름을 걷어내는 건 내 몫.

그걸 글로 풀어쓰지 않는다면 상처는 아물지 못할 것이다. 더 나은 나는 없을 것이다.

 

 

 

22. 8. 19 금요일 변해버린 고향을 찾았는데 불현듯 어린 시절 상처로 몸이 반응했던 날을 기록하며